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으로 인해

나는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합니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3 4-5).

 

 

          참으로 슬픔이 많은 세상입니다.  여기 저기 슬픈 소식들이 많이 들립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떠난 보내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슬프시기에 자신이 죽으면 화장한 딸의 낙골함을 자신의 관안에 넣어 달라고 남은 아드님에게 유언하시다시피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함께 슬퍼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손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또는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사실을 아시게 된다면 얼마나 충격 속에서 슬퍼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암 투병 중에 있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한 지체의 심정은 어떠할까 생각됩니다.  이런 저런 슬픈 소식들을 접하면서 시편 90 1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모든 날이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지나가니 우리가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수고와 슬픔뿐인 이 세상에 오늘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마음에 슬픔과 어두움과 괴로움 등이 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낙심가운데 있고 내 속에서 불안해 하고 있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는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닌데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 다윗은 슬프게 다니고 있었습니다(시편43:2).  그는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고 있었습니다(2).  그를 억압하는 원수는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요 악하고 거짓된 자들이었습니다(1, 현대인의 성경).  그들로 인해 억압또는 학대”(2, 현대인의 성경)를 받고 있었던 다윗은 낙심하였고 내 속에서 불안해 하였을 뿐만 아니라(5) 그는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그래서 그는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2,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신앙의 여정 속에 만난 큰 파도와 풍랑과 같은 역경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과 슬픔 속에 있었을 때 ?”라는 질문을 수 없이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던졌을 것입니다심지어 우리를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워하기까지 했었을 것입니다아직도 기억이 납니다저희 교회 고 최분남 성도님이 사랑하시던 아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거실에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통곡을 하셨었는데 그 아드님의 추모 예배 후 저에게 오셔서 목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러워요라고 예쁘게 말씀하신 것을 잊지 못하겠습니다저는 그 분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분이 그 정도로 마음이 괴롭고 슬퍼하셨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저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그 하신 말씀을 다 들으셨다고 믿습니다저는 고 최분남 성도님만 아니라 우리도 극심한 괴로움과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 울부짖으면서 충분히 라는 기도 속에 심지어 하나님까지 원망스러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간구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다윗은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을 했기 때문입니다(2).  여기서 이란 단어의 원어 히브리어 의미는 피난처를 의미합니다(박윤선).  그 말은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주는 나의 피난처가 되신 하나님이십니다고 고백을 했다는 것입니다.  새 찬송가 70 1절과 4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  높으신 하나님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되시는 주 하나님.”  환난을 당하고 있었던 다윗은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였지만 피난처 되시는 주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그 피난처 되시는 주님께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셔서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 시온과 주가 계신 성전으로 나를 이끄소서”(3, 현대인의 성경).  비록 그는 경건치 않은 사람들악하고 거짓된”(1, 현대인의 성경) “원수들로 인해 슬프게 다니고 있었지만(2)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3)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길 간절히 원했습니다(4).  그리고 그는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러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오늘 토요 새벽기도회 때 선포하다가 사도행전 16 2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어떻게 바울과 실라는 깊은 옥에 가둔바 되었고 자신의 발에 쇠고랑을 든든하게 채워 놓인바 된 상황에서(23-24, 현대인의 성경)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었을까요? (25어떻게 하면 우리도 깊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동서남북으로 문제 해결점이 안 보이는 큰 위기가운데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는 낙심하고 불안해하며(43:5) 두려워해야 하지 않나요?  저는 그 비결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말씀에서 찾아보았습니다(5).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에 우리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할 수 있습니다(5).  하나님의 도우심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3).  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를 수 있습니다(4).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큰 기쁨의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할 것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기쁨의 하나님으로 인해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기뻐하라고 찬양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1 7 10, “그때 주께서는 나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셨으며 내게서 슬픔의 옷을 벗겨 주시고 기쁨의 띠를 띠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침묵을 지키지 않고 주께 찬양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겠습니다.” ( 30:11-12,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