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증인이 되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 8).

 

 

 

새해 2022년을 맞이하여 우리 승리장로교회의 목표는 더욱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더욱더 새롭게 해주시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더 변화시켜주셔서 더욱더 예수님을 닮아가길 기원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직장이나 회사에서든 등등 세상 사람들에게 안디옥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내면적인 신앙생활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더러움과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믿음에 견고히 서서 세상과 분리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것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재물의 유혹을 뿌리치며 또한 절제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므로 교회의 하나 됨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을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새해 2022년 표어 성경 구절은 바로 사도행전 1 8절 말씀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증인”(witnesses)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알리는 자들입니다(MacArthur).  원어 헬라어의 의미는 ‘그의 믿음을 위하여 죽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데 지불해야 할 값이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바로 “순교”(martyrs)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음이것을 우리는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인터넷 글을 보니까 소명(召命)이란 '부를 소' '목숨 명'을 써서 소명이라고 합니다.  , 소명이란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입니다우리 모두가 주님께 소명을 받았는데 그 소명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소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우리의 목숨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해야 할까요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5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야 합니다.

 

성경 호세아 6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현대인의 성경) “더구나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힘써 알아가야 합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매주 수요기도회 때 원로 목사님이 전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지런히 듣기를 권면함).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6:15)라고 질문하실 때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이다”(16)이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돼야 합니다.  새찬송가 453예수 더 알기 원하네” 1-3절과 후렴 가사입니다:

 

(1절)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2절)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알게 하소서

(3절)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절 한절이 내맘에 교훈되도다

(후렴) 내 평생의 소원 내평생의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둘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역경을 만났을 때 우리 육신의 귀는 그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말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그 결과 우리는 그 어렵고 힘든 상황의 소리를 듣고 또 들으므로 말미암아 걱정하고 염려하며 또는 두려워하며 불안해하며, 상처와 괴로움 가운데서 허덕일 때도 있습니다더 큰 문제는 이러한 소리를 들을 때에 우리의 반응입니다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지 않고 듣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어렵고 힘든 상황의 소리를 들을 때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소리로 하여금 우리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든지 내버려두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비성경적인 생각들로 채워 생각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은 진리의 말씀으로 절제되지 못한 상태에서 표현하고 표출되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합니다.  거기에다가 우리의 의지까지 비성경적인 생각과 감정에 휩쓸려서 행동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기까지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어렵고 힘든 상황의 반응하는 우리 생각의 소리와 감정의 소리를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인 말씀의 소리로 그 생각의 소리와 감정의 소리를 수 없이 점검하면서 비성경적인 생각의 소리와 감정의 소리를 듣기를 거부하고 오직 주님의 음성 듣기를 즐거워해야 합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성경 로마서 10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믿음은 듣는데서 생기고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부지런히 듣되 우리는 우리의 영적 귀를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주님의 말씀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의 영적 귀를 훈련시켜야 합니다그 목적은 분별력 있는 귀를 가지기 위해서입니다그래야 우리는 주님의 음성과 타인의 음성을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빌립보서 127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므로(1:27)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부정할 수 없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414, 16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고침 받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들이 주목할 만한 기적을 행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우리도 이것을 부정할 수가 없소.”  이 말씀의 배경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예수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으로 인해 성전 경비 대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크게 분개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가두었습니다(2-3) 이튼날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공회에 다 참석하여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에게 질문하였을 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면서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5-10,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유대인 지도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담대히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을 뿐만 아니라 고침 받은 앉은뱅이가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13-14,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의논을 했을 때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그 이유는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그들도 부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15-16). 

 

여러분,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임을 더 이상 부인할 수가 없고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분명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 식구들과 우리의 생명까지도 미워할 정도로 예수님을 더욱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신실하게 좇아야 합니다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바른 삶을 살며, 바른 인간관계, 바른 사업관, 바른 상속관, 바른 미래관 및 바른 헌신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도덕 생활은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식하였던 바리새인들 보다 더 더 훌륭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합당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올바르고 정직해야 합니다특히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합니다(1:27).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로 견고히 세움을 받을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요 참된 주님의 교회임을 부인할 수가 없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로도 전해야 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161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성령님께서 바울과 그의 일행으로 하여금 아시아나 비두니아로 가는 것을 막으시므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마게도냐로 건너가는 관문인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8).  거기서 거하고 있었을 때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는데 그 환상에서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그 때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인정”하고) 환상을 본 후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10).  우리 성령님은 우리가 가고자 애썼던 문을 막으셨을 때에는 꼭 다른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이 가고자 애썼던 문은 바로 아시아(Asia)와 비두니아였지만 성령님께서 그 문을 막으셨지만 결국 환상을 통해서 그들을 마게도냐, 즉 유럽(Europe)로 가는 문을 열어주시고 그 문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사도행전 16 10절에서 인정함이러라는 단어가 흥미롭습니다이 단어의 의미는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s라는 주석에 의하면 ‘인정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함께 가도록 만들다’, ‘하나로 되다’, ‘결합시키다’, ‘이것저것에 동의하므로 결론을 내리다’입니다(to make go together, to coalesce or knit together, to make this and that agree and so to conclude).  이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에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은 바울의 환상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이성(reason)을 사용하여 논한 결과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함께 동의하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칼빈의 말을 빌리자면 바울과 그의 일행은 환상을 통하여 주님께서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그의 뜻을 계시해 주셨음에 충분히 설득을 당했다(being fully persuaded)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뜻을 분별함에 있어서 제일 먼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12:2).  그러므로 영적 민감한 가운데서 성령님께서 막으시는 문과 열어주시는 문을 분간해야 합니다그는 분명히 한 쪽 문을 닫으시며 또 다른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 다음에 중요한 점은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이성, ,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져가는 이성을 사용하여 함께 동의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에 평강과 믿음과 담대함으로 함께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내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20:24)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 안에서 및 교회 밖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 이웃과 함께하는 동안 그 이웃에게 선한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성경 사도행전 20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사명”(diakonian)으로 번역된 말은 ‘수종든다’는 뜻입니다사명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심부름하는 종으로서 주님을 목숨을 걸고 수종드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을 마침에 있는 그는 자기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받은 사명인 복음 증거를 완수하는 것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사도 바울처럼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 안에서 및 교회 밖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로만 전할 뿐만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우리가 돼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주님의 소명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8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는데 성경 누가복음 2449절에서도 저자 누가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위로부터 능력”, 즉 “권능”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정치적인 파워나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건한 생활의 개인적인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말씀합니다(주석).  이 권능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에게 임한 성령이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능력으로 시작하게 했듯이,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동일한 성령님이 능력으로 역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유상섭).  한 마디로, “위로부터 능력”, “권능”은 복음 사역을 감당케 하는 능력을 말씀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리워 가시기 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셨는데(승천하셨는데)(9)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11).  여기서 천사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2가지로서 (1) 승천하신 예수님은 재림하실 예수님이란 사실과 (2) 승천하신 예수님은 동일한 방식으로 재림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증인은 재림의 소망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청지기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잘 감당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청지기로서의 사역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의 양식으로 양육하는 것(12:35-48)으로서 요약한다면 복음 전파와 말씀 양육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 사역을 승천하시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역인 복음 전파와 말씀 양육 사역을 감당케 하시되 성령님을 통하여 계속 감당케 하십니다.  성령님의 능력(권능)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 안에서 및 교회 밖에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과 입술로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새해 2022년도를 맞이하여 더욱더 예수님을 알아가며, 예수님을 닮아가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 받기를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2 1 2, 주님께서 주님의 승리장로교회를 증인의 공동체로 세워 나아가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