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5)

 

 

 

[요한일서 3 11-24절 말씀 묵상]

 

 

            넷째로,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지 않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315절을 보십시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현대인의 성경)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자입니다. 살인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가족 식구이든 교회 식구이든 이웃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함에 있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십니까여러분도 주일 예배 당에 올라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알면서도(5:23) 그 형제와 먼저 화목하지도 않고 예배를 드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주일 아침 예배 당에 올라오면서도 부부가 서로 다툴 때도 있고, 자식들과도 얹잖은 일도 있으며 교회에 와서는 성도들 서로 간에 좀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가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 드리기 전에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5:24).  과연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왠지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의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서로 껄끄러운 관계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예배당에 올라와 서로 악수나 인사를 하면서 한 자리에 앉아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인간의 사랑은 연약하고 부족하며 신뢰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그러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교회의 통일성(unity)을 지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이러한 형제 사랑을 가리켜 성경 요한일서 2 10절은 ‘거리낌이 없는 형제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만일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형제 사랑에 관한 거리낌이 있다면 그 거리낌은 왜 있는 것입니까그 이유는 바로 형제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요일2:11). 

 

성경은 이렇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한일서 211절을 보십시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빛이십니다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1:5).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것이므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6).  성경은 이렇게 거짓말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행하므로 갈 곳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11).  어두움이 형제를 미워하는 자의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11).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으므로 말미암아 진리 가운데 행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머리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미움으로 차 있는 어두운 마음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 형제의 사랑조차도 받기를 거부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2:9).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케 되지 못한 자입니다(2:5).  빛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3 1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현대인의 성경)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자입니다. 살인자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3:13).  어느 면으로 보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생각합니다그러나 이상한 것은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임에도 불구하고 형제가 서로 미워하는 것입니다성경은 이렇게 형제가 서로 미워하는 것을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놀랍지 않습니까보통 살인하면 우리는 칼로, 총으로 등등 사람을 죽이는 것을 생각하는데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요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 중 7계명은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0:13).  그런데 이 말씀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두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12:31)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때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결국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 28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5:28).  실제로 그 여자와 간음했다라기 보다 “음란한 마음”(5:4; 6:9)으로 그 여자를 보았다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했다는 말입니다, 음란한 마음은 간음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럼,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은 ‘살인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요일3:15).  그리고 이렇게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살인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실제로 그 형제를 살인할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312절에서 실제로 자기 친동생인 아벨을 죽인 가인에 대해서 말하면서 “가인 같이 하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성경은 이렇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요,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5).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이미 영생을 얻은 성도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 답게 천국 계명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합니다(22:37-39).  그러나 주님의 계명의 불순종하여 형제를 자신 같이 사랑하지 않고 마음으로 미워하여 마음의 살인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요일3:15).  영원한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형제를 미워하고 마음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살인죄를 범합니다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지 않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15).  이렇게 마음으로라도 살인하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아직도 사망에 머물러 있는 자요(14), 세상이 사랑하는 자요(13) 그의 행위는 악합니다(12).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아니됩니다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마음으로라도 살인죄를 범한 것을 회개하기를 더디 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즉시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우리는 요한일서 1 9절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요한일서 1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입니다(10,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형제, 자매를 사랑할 때에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14, 현대인의 성경).

 

 

 

살인하는 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 쓰임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0 6 14,  완전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천국 생활을 바라보며 꿈을 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