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 25-34]

 

            오늘 오후 5시즘에 아내와 함께 입관식에 다녀왔습니다아내의 직장 동료가 55세 나이로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의식없이 기계와 약물에 의존하여 지내다가 결국에는 가족의 동의 아래 산소호흡기 및 모든 것을 중단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저는 아내와 함께 유가족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고인의 89세되신 어머님께서 저희 부부를 알아보시고(고인이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을 때 찾아뵈었기에) 자신의 며느리와 손자에게 제 아내를 직장 “supervisor”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저는 그 고인의 어머님을 생각하면 55세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신 어머님의 마음이 어떠하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우실텐데도 불구하고 그 어머님은 제가 아내와 함께 중환자실에 찾아갔었을 때 만일 아들이 죽으면 이 땅에 남아 있을 며느리와 손자를 생각하여 제 아내에게 직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쌓인 연금같은 것을 자신의 아들 대신 남은 가족이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보셨습니다제 생각엔 아마 그 이유는 그 어머님은 자신의 아드님의 가정을 생각할 때 여태까지 약 23년 동안 자신의 아드님만 일해서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자신의 며느리도 일을 중단한지 벌써 약 23년이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손자의 나이가 23살임).  그러니 그 어머님의 마음은 자신의 아들이 죽으면 남아있는 며느리와 손자가 걱정되어 아내에게 수혜자’(beneficiary)에 대해서 물어본게 아닌가 생각됩니다이렇게 그 어머님은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남아있는 며느리와 손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미리 생각하고 계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하루 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특히 우리는 제 아내의 직장 동료의 남은 식구처럼 집안의 생계비를 버는 가장(breadwinner)이 갑작스럽게 죽으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할지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로서 성경에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염려할만한 일이 생기면 염려할 때가 수 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그래서 저는 오늘 예수님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 기도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5-34절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2가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1)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5).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5절 상반절과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두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 한 번은 목숨을 위하여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염려를 합니다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위하는 본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우리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기에 우리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음식”(25)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알고 있듯이 우리가 그 음식을 사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합니다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살고자 음식을 염려하지만 결국에는 돈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2)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6:34).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목숨을 위하여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5)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34).  이 두 구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고 계신지 잘 알고 계십니다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우리의 목숨과 몸과 내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합니다그 이유는 우리는 미래를 알고 싶은 강한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목숨과 몸을 위하여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도 살고 싶은 본능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합니다분명히 성경은 그의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7:14)고 말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4:14)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는 장래의 일내일 일을 알고 싶어하고 또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 한 날의 괴로움으로도 족한데(6:34)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면서 미리 괴로움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염려합니다우리는 가장 작은(사소한) 일도 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들까지 염려합니다(12:26).  저는 이런 저런 일들로 염려를 합니다저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염려합니다(10:19).  또한 저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합니다(고전7:33).  저는 교회 일로 염려하고 근심합니다(고후11:28, 참고: 10:41).  교인들 중에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날까봐 염려합니다(29:18).  특히 저는 제 자신과 우리 교회 식구들이 사탄의 유혹에 빠질까 염려합니다(딤전3:7).  이렇게 저는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21:34) 또한 이렇게 세상의 염려를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막혀 결코 결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4:19).  저는 이러면 안 되다는 것을 알면서도(4:19) 지금도 여러 가지 일들을 염려하고 있습니다저는 오늘의 일 때문에도 염려를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미래) 일루도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5-34절에서 예수님께서 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이유를 한 7가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1)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25).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목숨음식의복보다 더 중요하잖습니까우리가 음식을 먹는 이유는 우리의 목숨을 위해서이고, 우리가 옷을 입는 것은 우리의 몸을 위해서이잖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목숨과 몸을 위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음식과 의복을 더 중요하시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그 음식과 의복을 살 수 있는 돈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과 몸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문맥인 마태복음 6 21절과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둘 중에 하나입니다우리의 마음에 보물하나님이든지 아니면 재물입니다그 말은 만일 우리의 보물이 하나님이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이요, 만일 재물이 우리의 보물이라면 우리의 마음은 재물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만일 우리가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우리의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음식과 의복을 우리의 목숨과 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요, 음식과 의복을 목숨과 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중요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보다 재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은 우리는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결국 지금 우리는 재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우리는 이래서는 아니됩니다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재물을 미워해야 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재물을 경히 여겨야 합니다우리의 보물을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우리의 마음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음식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몸을 위하여 의복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예수님의 마음에는 우리가 보물이요 예수님의 마음에는 우리가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과 몸을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8:32, 현대인의 성경). 

 

(2)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입니다(6:26).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6절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음식이나 의복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의 말씀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도 기르시고 계신데 그 새보다 더 귀한 우리를 기르시지 않으시겠냐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근처에 노숙자 한 분이 인도(sidewalk)에 테트를 치고 거기에 사시는 분이 있습니다제가 그 분이 거하는 텐트 쪽으로 운전하여 집을 가곤하는데 지금까지 한 두, 세번 본 것은 그 분이 많은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입니다그 분이 한손으로 봉지를 들고 또 다른 손으로 봉지 안에서 먹이를 꺼내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면 더 많은 비둘기 떼가 모여들어서 인도길 한 부분이 온통 비둘기 떼들이었습니다그 모습이 생각난 이유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6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도 기르신다는 말씀을 생각할 때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노숙자 분을 통해 그 많은 비둘기들도 먹이신다고 생각되었습니다이렇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비둘기들도 먹이신다면 하물며 그 비둘기들보다 훨씬 귀한 예수님의 목숨과 몸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사함을 받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43:4)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먹이시지 않으시겠습니까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던 엘리야 선지자도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먹이게 하시되 까마귀들이 아침자녁으로 떡과 고기를 엘리야 선지자에게 가져와 그로 하여금 먹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왕상17:3-6) 그 노숙자 분을 통해서 그 비둘기들을 먹이셨을진데 저와 여러분을 먹이지지 않으시겠나요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주기도문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현대인의 성경)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6:11).  실제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날마다 주시지 않았습니까그러므로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르시기에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염려함으로 우리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27,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현대인의 성경)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염려함으로 우리 자신의 키를 한 치라도 더 늘릴 수 없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염려하는 것,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 염려함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염려 없기를 원하지만(고전7:32) 원치 않게 계속해서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염려함은 무익한 것입니다우리가 아무리 염려한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염려한다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오히려 염려할 시간에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게 훨씬 더 낫습니다복음성가 기도할 수 있는데가 생각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  우리는 기도로 우리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그 이유는 주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벧전5:7).  주님께 모든 염려를 기도로 맡기되 우리는 빌립보서 46절 말씀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면서(12:2) 믿음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다 아뢰야 합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히시기 때문입니다(6:30).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0절을 보십시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현대인의 성경)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하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도 이렇게 입혀 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혀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네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히시기 때문입니다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도 하나님께서 잘 입혀 주시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혀주시지 않겠습니까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28) “믿음이 작은 자들아”(30)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중에 옷이 없어서 벌거벗은 몸으로 밖에 돌아다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 입혀주셨습니다잘 입혀주시되 저는 지금까지 옷이 없어서 염려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오히려 저 같이 똑같은 옷을 어절때는 1주일 동안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옷이 많다고 생각합니다저뿐만 아니라 저희 집 식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가끔 안입는 옷들을 정리해서 Goodwill이란 곳에 같다 주고 또한 어쩔 때는 멕시코 선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보냅니다이렇게 옷이 넘치도록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데 어째서 우리는 옷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일까요믿음이 작아서 그런 것입니다(30).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적어서 그렇습니다우리를 먹이실 뿐만 아니라(26) 우리를 입히시는 하나님(30)을 믿는 믿은이 작기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25).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1). 

 

(5)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32절상,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3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현대인의 성경)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다섯번째 이유는 이런 것들은 모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다시 말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 것이요 그 말씀의 내포된 의미는 우리는 믿는 신자들로서 이런 것들을 애써 구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믿는 자들로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해서는 아니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음식과 의복을 간절히 찾습니다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보물이기 때문입니다그들의 마음은 그 보물에 있는 것입니다(21).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그 보물을 땅에 쌓아 둡니다(19).  땅에는 좀과 등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는데도 말입니다(19).  그러나 우리 믿는자들의 보물은 예수님이여야 합니다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에게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우리의 우선순위는 먼저 그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되야 합니다(33).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둘 것입니다(20).

 

(6)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32절하).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3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여섯번째 이유는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26),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30)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는 것(32)은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목숨을 위하여 음식이 필요하고 몸을 위하여 옷이 필요한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십니다(139:1).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1, 현대인의 성경).  “주께서는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며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내가 일하고 쉬는 것을 다 보고 계시며 나의 모든 행동을 잘 알고 계십니다여호와여, 주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다 아십니다”(2-4,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셨기에(1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제일 잘 아십니다그리고 우리를 제일 잘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제일 사랑하십니다그러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모르시겠습니까다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4:16)를 베푸시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공급해 주십니다(참고: 22:14).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7)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기 때문입니다(6:34).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3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곱번째 이유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오늘 하루의 염려로 인하여 괴로움도 족하기에 우리는 내일의 염려를 미리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괴로움이 많은 이 세상입니다이 세상은 괴로움의 골짜기[“아골 골짜기”(7:24)]와 같은 세상입니다세상의 모든 일이 다 괴로운 것뿐입니다(2:17,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괴로운 인생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합니다(6:34).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미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 관하여 적용을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5-34절에서 예수님의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에 관하여 3가지 적용을 찾아 보았습니다:

 

(1)  공중의 새를 보라”(26)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6절을 보십시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아직도 기억납니다. 지난번에 영어사역 연합 수련회를 산으로 가서 아침에 숙소 밖 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앉아 날라 다니다가 나무에 앉았다 하는 새들을 바라보면서 마태복음 6 26절 말씀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래서 저는 그 새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 말씀을 묵상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새들도 기르고 계시는데 이것들보다 훨씬 귀하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있는 나를(43:4)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기르시지 않으시겠는가.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저를 기르시사 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되 풍족히 주셔서 음식이 없어서 굶은 적이 없었습니다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입을 것을 공급해 주셔서 한 번도 옷이 없어서 벌거벗고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음식이나 옷이나 넘치도록 과분하게 누리면서 살게 해주셨습니다그러므로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공중의 새를 보면서 염려하지 않고 싶습니다(6:26). 

 

(2)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28)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8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아직도 기어납니다제가 국민(초등)학교 때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상계동 상현교회 사택 앞에 있는 정원(?)에서 장미꽃을 한손으로 살며시 잡고 사진을 찍은 것을요제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사진이 제 앨범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저는 왜 제가 그렇게 꽃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지 스스로 의아해해서 그런가 봅니다. 하하저는 그 사진이 생각난 이유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28절에서 예수님께서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을 묵상할 때 생각난 것은 그 사진이요 그 자신의 장미꽃이 생각났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장미꽃보다 튜립을 좋아합니다그래서 제가 결혼 전 아내를 소개받아 짧게 나마 연애를 했었을 때에도 저는 아내에게 여섯개의 노란 튜립과 한개의 빨간 장미꽃(도합 7)을 선물한곤 했습니다[제가 튜립(tulip)을 좋아하는 이유는 신학대학원에서 배운 죤 칼빈의 5대 강령 때문입니다: TULIP = T(total depravity, 전적타락), U(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L(limited atonement, 제한적 구속), I(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혜), P(perseverance of saints, 성도의 견인)].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고 말씀하신 후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8).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말씀인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것은 수고도 하지 않고 옷감도 짜지도 않는다”](28)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았을 때 요나 4 10절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현대인의 성경)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그 다음 날 아침에 말라 죽은 그 박 덩굴도 측은하게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다가(6) 시들어 버린(7, 현대인의 성경) 그 박넝쿨로 말미암아 죽고 싶을 정도로 화낸(9, 현대인의성경) 요나 선지자에게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0-11).  저는 이 요나서의 말씀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라는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30절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도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데 하물여 예수님의 목숨과 몸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가 된 우리를(43:4) 하나님께서 더 잘 입혀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6:30, 현대인의 성경).  

 

(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

 

오늘 본문 마태복음 6 3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는 마음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의 보물이 예수님이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만일 우리 마음의 보물이 재물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구하는(32, 현대인의 성경) 음식과 의복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염려할 것입니다. 염려하되 우리는 목숨과 몸보다 음식과 의복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요(25) 우리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고 있을 것이며(19) 또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면서(34)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24).   그러나 만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보물이면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는 공중의 새를 보고(26) 또한 하나님이 입히시는 들의 백합화를 생각하면서(28) 음식과 의복으로 인해 염려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32) 믿음으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서 살 것입니다(33).  우리는 우선순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우리의 우선순위는 예수님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길 원하는 자들이요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헌신한 자들입니다이렇게 우리가 우선순위를 바르게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의복 등을 주실 것입니다(33,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34).

 

 

 

 

무엇을 염려하지 말아야 하며, 왜 염려하지 말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예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9 10 6, 주님의 날에 지난 52년 동안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길러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