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통한 죄 뉘우침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나를 찾을 때까지 내가 내 처소로 돌아가 있겠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면 나를 간절히 찾을 것이다”] (호세아 5 15).

 

 

            고통을 당하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저는 그 형제, 자매들 각자가 겪고 있는 고통을 잘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그들 각자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질병이나 정신 질환이나 부부 관계 등 여러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지 저는 그저 그들의 눈물을 보며 그들의 마음의 소리와 심지어 신음 소리를 듣고자 기원하며 작은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그리고 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의 귀에다가도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아무 의식이 없고 산소호흡기와 여러 종류의 약물을 의존하여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그들의 귀에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진정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90:10).  이렇게 수고와 슬픔뿐인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난을 부정적으로만 보기보다 고난의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제 생각의 근거는 시편 11967절과 71절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저는 이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 고난의 유익은 두 가지입니다: (1) 고난의 유익은 우리의 그릇 행함을 깨우쳐 준다는 것입니다.  (2) 고난의 유익은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에 대한 깨달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과 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또한 고난의 유익은 우리가 전적 무기력함과 전적 무능력함을 경험하는 절망 속에서도 구원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는 구원자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과 입술로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라고 고백케 하는 것입니다(2:9).  이것이 바로 고난의 큰 유익입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 5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고 나를 찾을 때까지 내가 내 처소로 돌아가 있겠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면 나를 간절히 찾을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고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유익은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는 것입니다영적 음행 속에서 자기들이 사랑하는 우상(바알)을 따르며 찾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2:5, 7)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는 것입니다(5:15).  간절히 찾되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 뉘우치는 죄란 무엇일까요물론 그들이 뉘우쳐야 할 그 죄란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었기 때문입니다(1:2).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서라도 뉘우쳐야 할 죄란 하나님을 떠나 더러운 창녀짓을 하고 있었던 죄입니다(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 더러운 창녀짓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우상)에게 분향한 것을 가리킵니다(2:13,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통해 뉘우쳐야 할 죄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 것입니다(3:1).  그러면 왜 그들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요왜 우리는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20:3)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고 있는 것일까요예를 들어, 왜 우리는 하나님 보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딤후3:1-2, 현대인의 성경왜 우리 목사님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돈을 좋아하고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16:14)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13).  저는 우리 목사님들부터 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통해서라도 뉘우쳐야할 죄란 적어도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힘써 알지 않는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

 

            성경 호세아 6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것처럼 확실하다.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봄비같이 그가 우리에게 나오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사랑하고 따른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4:6).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따른 것입니다그런데 이 죄악된 일에 압장선 원인 제공자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고 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께 더 많이 죄를 범했습니다(6-7, 현대인의 성경).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먹고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더 많이 짓기를 바랬습니다(8,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악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나 제사장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9,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창녀 행위와 술로 인해 마음을 빼았겼고 또한 음란한 정신에 미혹되어 창녀짓을 하고 그들의 하나님을 떠났습니다(12,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고 분향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이방 신전의 창녀와 함께 놀아났고 그녀들과 함께 바알에게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13-14,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우상과 연합해서 계속 창녀짓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했으며(16-18)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하여금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5:4).  그 이유는 음란한 마음이 그들 속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었습니다(4).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4:14).  이렇게 망할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깨트리고 부서트려서라도 그들을 고치시고 치료하시고자 하셨습니다(11, 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자처럼 공격하셔서라도 그들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시사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게 하시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14-15,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 목사님들부터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목사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주님께 더 많이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그 결과 우리로 인해 지금 교회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는 예수님보다 복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특히 지금 우리는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믿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 목사님들부터해서 온 성도님들이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죄를 깨닫고 뉘우쳐야 합니다우리는 예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우리는 예수님보다 복을 더 사랑하는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죄를 깨닫고 뉘우쳐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힘써 예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합니다(4:13; 1:10; 벧후3:18).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3:8).

 

            둘째로,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침 안개와 일찍 사라지는 이슬 같은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

 

            성경 호세아 6 4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유다야,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너희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더러운 창녀짓을 하되(1:2, 현대인의 성경)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쫓아가겠다그들은 나에게 빵과 물과 양털과 모시와 기름과 술을 준다라고 믿고 자기들이 사랑하는 우상 바알을 쫓아갔습니다(2:5, 7,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마치 음란한 여자[“창녀”(현대인의 성경)](1:2)인 고멜처럼(3) “다시 가서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재물로 드린 건포도 빵을 즐겼습니다(3:1,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은과 금뿐만 아니라 양털과 모시도 다 주셨는데(2:8-9) 그들은 자기들을 사랑하는 자들이 자기들에게 준 값이라고 믿었습니다(12).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고난을 당하게 하시사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게 하시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5:14-15,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15:8,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우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22:37) 실제로 마음으로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딤후3:2).  그리고 지금 우리는 주님께 받은 축복들을 우상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축복들을 주님의 교회와 나라와 복음 선교를 위해 드려지기 보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이 죄악된 세상에 사용하는데 분주하고 있습니다이렇게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이중적입니다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순수하지 못합니다그리고 그 사랑은 신실한 사랑이 아닙니다그나마 신실하고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한들 그 사랑 또한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 같습니다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십니다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그 사랑은 진실하고 신실한 사랑이요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시는 사랑입니다그 사랑으로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심지어 우리가 영적 간음 행위를 행하므로 다른 신을 섬겨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3:1).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8:38-39).  이 사랑을느끼고 경험하며 깨달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마치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주님 앞에서 인정하고 자백하며 뉘우쳐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행한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

 

            성경 호세아 6 6절을 보십시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현대인의 성경)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며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보다 나를 아는 것을 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란한 마음을 가지고(5:4) 하나님께 음행을 하면서도(3) 그들이 사랑하고 있었던 우상 바알을 따랐습니다(2:7, 16-17).  그들은 하나님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한 것입니다(5:7).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번제를 드렸습니다(6:6).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6).  이 말씀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산 것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별 다를바가 없습니다지금 우리는 입술로는 예수님처럼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지만(22:42) 실제로 우리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보다 우리의 멋대로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충동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뜻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참고: 고전9:27).  말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겠다고 하지만(42:6) 실제로 우기가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좋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우리가 원하는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지금 거짓 목사들은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고 있는 교인들을 그 죄에서 돌아서게 하기보다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나가서 계속해서 더 죄를 범하도록 주일 예배 때 강단에서 설교로 그들을 축복 설교하고 위로의 설교로 격려하고 있는데(참고: 23:14)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우리의 영적 음행의 죄를 인식하고 인정하며 뉘우치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원하는대로 주일에는 예배당에 올라가 예배를 우리가 원하는대로 드리고 주중에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주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고난을 통해서라도 이 죄를 깨닫고 우리의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충돌될 때에 우리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원하시는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기도 후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새찬송가 549내 주여 뜻대로”, 3).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 각자가 접하는 고난을 우리는 부정적으로만 볼께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또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리할 때 우리가 특히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무엇일까를 깊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묵상해봐야 합니다오늘 본문 호세아 5 15절에 근거해서 우리의 고난을 묵상할 때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만는다는 것입니다간절히 찾되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게 만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지금 우리는 교회가 당면한 고난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간절히 찾되 우리는 지금 교회가 하나님께 범하고 있는 죄를 뉘우치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지금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아가고 있지 않는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지금 우리 교회는 아침 안개와 새벽 이슬과 같이 일찍 사라지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깨닫고 뉘우쳐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지 않고 우리 멋대로 행하고 있는 죄를 뉘우쳐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긍휼이 여겨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9 9 22,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 교회의 죄를 회개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