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안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시편 119 76).

 

 

            어젯 밤 잠들기 전에 성경책을 피고 시편 119 72절부터 읽기 시작하다가 76절 말씀에 제 시선이 멈췄습니다분명히 매년마다 읽었던 성경 말씀일텐데 여태까지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말씀입니다그런데 어젯 밤에는 이 성경 구절에 제 시선이 멈추어 서더니 “…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란 말씀에 약 20년 전에 추억이 생각났습니다그 약 20년 전의 추억이란 1998 4 27일 월요일 아침에 읽었던 성경 구절 시편 63 3절 말씀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그 날 그 아침에 그 말씀을 읽을 때에 주님의 영원하신 사랑이 내 첫째 아기 주영이의 55일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님을 찬양할 것이라라고 제 자신에게 적용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나서 저는 제 아내에게 시편 63 3절 말씀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나누었고 그 후에 저희 부부는 엘에이 어린이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주영이를 빨리 죽게하기로 결정하고 병원에 담당 의사 선생님에겐가 알려드렸습니다(그 전 날인 4 26일 주일 오후에 아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역을 다 마친 후 병원 중환자실에 갔더니 담당 의사 선생님이 저만 불러다가 아기를 빨리 죽게할 것인지 아니면 천천히 죽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때 저는 천천히 죽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음).  이 추억과 더불어 생각난 추억은 주영이의 뼛가루를 가지고 아내와 함께 배타고 나가서 물에 뿌린 후 육지로 돌아올 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저로 하여금 주님의 놀랍고 굉장한 구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던 순간입니다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은 4 27일 월요일 아침에 받은 시편 63 3절 말씀대로 주님은 그 말씀을 성취하시사 저로 하여금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케 하셨다는 것입니다이 두 추억이 어젯 밤 시편 119 76절을 읽고 묵상하는데 즉시 생각난 것입니다하하저도 좀 놀랬습니다왜 제 시선이 많고 많은 시편 119편 성경 구절들 중 76절에 시선이 멈췄고 그 말씀을 다시 한번 읽는데 약 20년 전에 그 두 추억들이 생각났고 그 성경 구절 말씀과 그 두 추억들이 그리도 딱 맞게 연광성이 지어졌는지 말입니다제 생각엔 제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리 역사하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여기까지는 7 6일 금요일에 묵상하면서 쓴 글임).

 

            이렇게 한 이틀전 잠에 성경 시편 119 76절 말씀을 묵상한 후 어제 금요일 새벽기도회 때와 금요 저녁기도회 때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오신 성도님들에게 이 시편 119 76절 말씀을 선포했습니다선포하되 7 1 2일 기도회인 금요 저녁기도회 때에는 시편 116 1-4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그런 후 이렇게 오늘 토요일 오전에 다시금 시편 119 76절과 시편 116 1-4절을 함께 묵상할 때에 저는 약 20년전 그 때 첫째 아기가 어린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을 때가 생각납니다그 때 저는 죽어가고 있는 사랑하는 첫째 아기 주영이를 55일 동안 바라보면서 마치 사망의 줄이 저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제게  이른 듯 했습니다(116:3).  저는 미련하게도 주영이가 죽고 나서야 그 아기야 말로 진정 사망의 줄이 그녀에게 둘렀고 스올의 고통이 그녀에게 이르렀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제 아내가 쓴 편지 내용대로 주영이는 그 때서야 고통에서 자유(free from pain)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저는 그 과정 속에서 고통과 슬픔이 너무 가득하여(3, 현대인의 성경) 주영이를 위하여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그 정도로 마음의 고통과 슬픔에 잠겨있었습니다그러나 그 때 수 많은 분들이 저희 야기 주영이를 위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저의 양가 부모님과 저희 부부의 친척 식구들 외에도 교회 식구들과 신학교 동문 목사님들 부부와 대학교 동문 형제, 자매들 및 많은 분들이 저희 아기 주영이와 저희 부부를 위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오늘 이렇게 다시 추억을 되새기면서 시편 116 1-4절 말씀에 비춰서 생각해 볼 때 그 많은 분들이 시편 기자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주님여, 주님께 구하오니 저희 부부와 주영이의 영혼을 건지소서라고 기도해 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4).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고(2) 그들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므로 말미암아(1) 주님께서 1998 4 27일 월요일 아침에 시편 63 3절로 저에게 말씀해 주셨고(119:76) 또한 그 시편 63 3절 말씀대로 주영이의 뼛가루를 물에 뿌린 후 배를 몰고 육지로 돌아올 때에 주님의 구원의 사랑, 그 굉장하고 놀라운 사랑을 찬양케 하셨다고 생각합니다결국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부와 주영이를 위하여 기도하신 모든 분들의 간구를 들으시고(116:1, 2) 저희 영혼을 건지셨을 뿐만 아니라(4) 주님의 인자하심을 경험케 하시사(119:76) 주님을 찬양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63:3) 저희 부부를 위안해 주신 것입니다(119:76).  그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죽은 주영이가 아니 마땅히 죄 가운데 죽어야 할 저를 크게 긍휼이 여겨주시사 저를 살게 해주셨습니다(77).  그렇다면 저는 시편 기자처럼 주님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야 하는데(77) 어찌하여 저는 아직도 원하지 않는 죄악을(7:19) 즐거워하고 있는지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하나님과 가족 식구들과 교회 식구들 및 사랑하는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죄송하고 죄송할 뿐입니다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서는 아니되는데,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로 하여금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해서는 아니될텐데(12;14) 말입니다첫째 아기 주영이의 죽음을 통하여 고난 당한 것이 제게 유익이었습니다(119:71).  그 이유는 아기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시편 63 3절 말씀을 배우게 되었고(71) 또한 주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63:3; 119:76).  그렇다면 이젠 고난 당하기 전에 그릇 행하였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데(119:67) 아직도 그리 살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니 사도 바울의 말이 생각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현대인의 성경) “아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요?”](7:24).  동시에 생각나는 말씀은 로마서 8 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저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하시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저는 나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저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에 하루에 일곱 번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주시는(18:21,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새찬송가 304,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제가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22 20절입니다: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  저는 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구약의 예언의 말씀대로 신약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40일 후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분명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기에 저는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신 말씀을 반드시 실행하시는 주님이십니다(23:19).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은 결코 헛되이 주님께로 되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55:1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주님의 인자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재림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우리를 위안해 주실 것입니다(119:76).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8714,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9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