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입은 상처, 배우자에게 입은 상처,
자녀에게 입은 상처, 형제, 자매에게 입은 상처,
친척에게 입은 상처,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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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삶 속에 주어지는 고난과 고통과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춤추시는 하나님”에서
한 4 가지로 반응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 네 가지를 가리켜
하나님과 춤을 추는 스텝 4 가지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과 춤을 추는 첫 번째 스텝은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슬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울어야 할 때 울어야 합니다.
울되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스럽고 아플 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고통스럽고 아프다고 아뢰야 합니다.
그러나 왠지 우리는 우리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인정하기보다 부인(deny)하려고 하던지 무시(ignore)하려고 하던지 아니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억누르려고(suppress)하려고 합니다.
만일 그리한다면 우리가 겪는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고난을 당할 때마나 원망하며 불평하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할 확률이 많습니다.

(2) 하나님과 춤을 추기 위한 두 번째 스텝은
고통과 아픔을 유발하는 원인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마비시켜 부정과 수치와 죄책이라는 옥에 가둔 은밀한 상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과연 고통과 아픔을 유발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원인이 뭔지 알아야 우리가 그 원인을 직시하던지 안하던지 할 텐데 많은 때에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통과 슬픔의 원인을 직시하지 못할 뿐더러 설상 우리가 그 원인을 안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의 본능은 그 원인을 직시하기보다 피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피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의 원인을 직시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주어진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3) 춤의 세 번째 스텝은
고통과 아픔, 상실과 상처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너무나 막대한 에너지를 부정하는 데 쏟아 부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 우리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가운데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 상실과 상처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고통과 아픔의 터널에 들어가야 합니다.
비록 어둡고 무서울 수 있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 터널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터널에 들어가지 않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4) 춤의 마지막 네 번째 스텝은
고통과 아픔, 상실과 상처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아픔, 상실과 상처의 터널에 들어가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 상실과 상처를 느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고통과 상처에 치유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세움을 받아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