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도 보기 싫은 자식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사무엘하 14 24).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자녀인데 어쩔 때는 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그 때는 바로 그 자녀가 제 말을 그리도 듣지 않을 때 입니다그 뿐만 아니라 그 자녀가 아빠인 저의 매우 화나게 할 때 저는 그 자녀의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그러면 저는 제 자녀에게 너가 빨리 결혼해서 집을 떠나면 아빠는 엄마하고만 둘이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ㅎㅎ  반농담이지만 실제로 저는 제 자녀 양육의 책임이 적어도 제 세 자녀의 결혼할 때까지 감당하게 되면 제 아내하고 둘이서만 살고 싶습니다그 정도로 저는 부부 관계가 자녀하고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저에게는 주님과 저하고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 제 아내하고의 관계 그리고 세 번째가 제 세 자녀하고의 관계입니다그리고 저는 주님과 저하고의 관계가 건강할 때 저와 제 아내하고의 관계와 제 자녀의 관계가 건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그래서 저는 제 아내하고의 관계와 제 세 자녀하고의 관계에 갈등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저는 주님께 나아갑니다저는 주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합니다구하지 않을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떻게 부부 생활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맡겨주신 세 자녀를 양육해야 할지 모를 때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14 24절을 보면 아버지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온 요압 장군에게(23) 압살롬을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자기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고 명합니다자기의 아름다운 여동생 처녀 다말(13:1, 2)을 강제로 동침하여[덮쳐 강간하여(현대인의 성경)] 욕되게 한 후(11-12, 14) 심히 미워하므로(15) 그녀를 크게 울부짖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19) 그녀의 오라버니인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게 만든(20) 암논을 2년 동안 참고 기다렸다가(23) 죽이고 그술로 도망했다가 3년 만에(37-38)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온 아들 압살롬인데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 아들  압살롬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자기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고 명한 것입니다(14:24).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그 이유는 분명히 성경은 다윗의 마음은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였다[“그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있었다”(현대인의 성경)(39)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다윗은 3년 만에 그리워하던 아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온 요압에게 그를 자기 집에 가서 머물러 있게 하고 내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라내가 그를 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을까요?(14:24, 현대인의 성경어떻게 3년 동안이나 마음으로 그리워하던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을까요어떻게 압살롬이 다윗에게 그렇게 꼴도 보기 싫은 아들이 되었을까요혹시 다윗은 압살롬이 암논을 죽여서 자기 아들 암논 때문에 슬픈 나날을 3년 동안 보내서 그랬을까요?(13:36-38, 현대인의 성경그래서 다윗은 그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하고 있었으면서도(39, 현대인의 성경)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을까요?(14:24)  자그만치 다윗은 3년만에 예루살렘으로 온 아들 압살롬의 얼굴을 2년 동안이나 보지 않았습니다(28).  도합 5년 동안이나 다윗은 자기가 그리워했던 아들 압살롬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3년은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고 2년은 안보았음).  2년 동안 압살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안그대로 암논이 자기 여동생 다말을 욕되게 하여 그를 미워하여 그와 일체 말도 하지 않았던 압살롬(13:22) 2년 동안이나 (23) 암논에게 죽이고자 결심하여(32) 그에게 복수하고자 마음의 칼을 갈다가 암논을 죽인 후(29) 그술로 도망하여 거기서 3년이나 지내다가(36-37)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아닌가요그것도 압살롬 자신이 오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라 요압이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14:1, 현대인의 성경) 지혜로운 여자 한 사람(2)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줘서(3, 19) 결국에는 다윗으로 하여금 압살롬을 데려오라는 허락을 받아(21) 그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기에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다시 온 것 아닌가요?(23그런데 자기 아버지 다윗이 자기의 얼굴을 2년 동안이나 보지 않고 있으니 압살롬의 입장에서 예루살렘에 온 것이 좋았겠나요 아니면 그냥 도망자로서 그술에 있는 것이 더 좋아겠나요압살롬이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서라도(30) 요압을 만나 그에게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  내가 차라리 그 곳(그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32, 현대인의 성경).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제 나와 왕을 좀 만나게 해 주시오라고 부탁하였고(32, 현대인의 성경)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압살롬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자 다윗 왕은 사람을 보내 압살롬을 불러오게 하여 그 때서야 2년 만에 부자가 처음 만났습니다(33).  그리고 압살롬은 4년 동안이나(15:7)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6, 현대인의 성경) 반역 음모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자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이 계속 불어났습니다(12, 현대인의 성경).  이 때 어떤 사람을 통해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13) 궁을 지킬 후궁 10명만 남겨 두고 모든 가족과 신하들을 데리고 즉시 예루살렘 성을 떠나(16, 현대인의 성경) 벧메르학에서 가드 사람들 600명과 함께(18) 광야 길로 향했습니다(23).  결국 다윗은 3년 동안 마음으로 그리워했던 아들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데리고 오게 한 후에도 2년 만에 얼굴을 본 후 4년 만에 압살롬에게 도망하여 광야로 간 것입니다그는 아들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광야로 도망한 것입니다(1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숫자를 좀 계산해 보았습니다먼저 암놈이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덮여 강간한 후(13:14, 현대인의 성경)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자 결심하고(32) 복수의 칼을 간 기간이 2(23) 더하기 압살롬이 압논을 죽인 후 그술로 도망하여 지낸 기간이 3(38) 더하기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어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못본 기간이 2(14:28) 더하기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쿠테타를 일으길 때까지의 기간이 4(15:7)을 하면 합계가 11년이란 숫자가 나옵니다그렇다면 저는 자그만치 11년 동안 압살롬의 마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길래 그는 자기 아버지 다윗까지 죽이려고 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15:14, 현대인의 성경).  제 생각엔 암논이 자기 여동생인 다말을 강간했었을 때에 2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면서 암놈만 죽이려고 했었지 자기 아버지 다윗까지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그런데 왜 암논이 다말을 강간한 그 때부터 11년이 지난 후에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인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요혹시 그 이유가 암논이 다말을 강간한 후 5(2년이란 복수의 칼을 갈던 기간 더하기 복수한 후 도망하여 3년 동안 그술에 있었던 기간)만에 자기 아버지 다윗이 자기를 그리워해서 요압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2년 동안 아버지가 자기 얼굴을 보지도 않아서 그랬을까요그래서 그 때부터 6(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아버지 다윗의 얼굴을 보지 못한 2년이란 기간 더하기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심을 도둑질하여 쿠데타 일으키기까지 기간이 4) 동안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미워해서 죽이려고까지 마음을 먹었을까요제 생각엔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결심하게 된 것은 11년이라가 보다 한 6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그러나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 11년 전부터 불만은 가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11년 전에 암논이 다말을 강간했었을 때 다윗은 아버지로서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기만 했지(13:21) 아들 암논에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다윗은 아버지로서 아들 암논을 징계했어야 하지 않았나요아니면 적어도 다윗은 암논을 사랑으로 책망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왜 다윗은 심히 노하기만 했었을까요분명히 그는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동생인 다말에게 행한 악과 더 큰 악(16)을 다 들어서 알고 있었으면서 왜 심히 노하기만 했던 것일까요혹시 다윗은 자기 유부녀 밧세바와 동침한 악과 더 큰 악인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것으로 말미암아 다말을 강간한 악을 범한 후 그녀를 쫓아보내는 더 큰 악을 범한 암논을 징계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어떻게 그런 큰 악을 범한 아들 암논을 아버지로서 아무 징계나 책망도 없이 심히 노하기만 하다가 끝낼 수 있을까요혹시 그리 심히 노하기만 한 아버지 다윗을 보고 강간을 당한 다말의 오라버니인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요그런데 도망갔다가 아버지가 요압을 통하여 자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와 놓고서 2년 동안이나 자기 얼굴을 보고싶지 않다고 안보는 다윗을 생각할 때 충분히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더 큰 불만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요오죽했으면 압살롬은 요압 장군의 밭에 불을 질러서라도 요압을 불러다가 그에게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왕이 나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때문에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는지 한 번 물어 봐 달라고 부탁까지 했었을까요?(14:32, 현대인의 성경그 때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제 나를 왕과 좀 만나게 해 주시오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왕이 나를 죽여도 좋소”(32,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아버지 다윗이 왜 자기를 예루살렘에 다시 데리고 와 놓고 자기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는지 그 이유가 자기의 죄 때문이라면 그는 자기 아버지의 손에 죽겠다는 각오로 아버지를 보고 싶어했었던 것 같습니다여기서 압살롬이 말한 그 는 자기가 다말에게 악과 더 큰 악을 행한 암논을 죽인 것을 말하는게 아닐까요그런데 이미 암논을 죽었고 그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은 거의 잊어서 이제는 그 마음이 도망간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했었던 다윗이(13:39, 현대인의 성경) 요압이 다윗의 허락으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온 압살롬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2년 동안이나 그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았을까요오래 전에 읽었던 유진 피터슨이 그의 책에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그는 다윗이 암논을 죽인 것을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고 있었기에 압살롬을 2년 동안이나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한 마디로, 아버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조차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아니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는 악과 우리아를 죽이는 더 큰 악을 범하고서도(11)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않았나요?(12:13, 현대인의 성경그런데 어찌하여 다윗은 다말을 강간하는 악을 범한 후 그녀를 쫓아내는 더 큰 악을 범한(13:16) 암논을 죽인 압살롬(29-29)을 용서하지 않고 있었을까요그래서 2년 동안이나 압살론의 얼굴을 보지 않을 정도로 압살롬은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그리 꼴도 보기 싫은 자식이었나요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사랑하는 자녀이지만 그리도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녀가 잘 용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만일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가 또 다른 우리의 자녀를 죽였다면 과연 우리는 그 자녀의 얼굴을 보면서 살 수가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 자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2년이든 20년이든 그 자녀와 떨어져서 살지 않을까요?  그 자녀의 얼굴을 보면 죽은 자식의 얼굴이 생각날텐데 어떻게 그 자녀의 얼굴을 보면서 식사를 하면서 가정에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벧전3:18) 자신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3:17)을 수 없이 악을 범하고 더 큰 악을 범하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일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새찬송가 144 2) 우리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고 계실 수 있으실까요?(3:7, 139:3)  우리가 우리 자신을 봐도 꼴도 보기 싫을 때가 많은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보고 계실까요?(43:4)   어떻게 임마누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우리와 함께하실 수 있으실까요?(1:23)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이렇게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일까요?(13:1) 

 

 

 

꼴도 보기 싫은 사람,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8 412,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나의 모든 악하고 악한 죄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 감사하면서)